송 전 장관, 자필 수첩 등 증거 추가 공개...하태경 "文안보팔이 끝났다" 비난
  •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된 북한 측 반응을 정리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청와대 문건.ⓒ중앙일보 캡쳐
    ▲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된 북한 측 반응을 정리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청와대 문건.ⓒ중앙일보 캡쳐

    이른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대북결재' 의혹을 폭로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문 후보가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논란을 부인하자, 송 전 장관이 의혹을 입증할 만한 당시의 자필 수첩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메모를 공개한 것이다.

    송 전 장관은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북한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며 당시의 수첩과 메모를 공개했다고 21일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송 전 장관이 공개한 문건에는 '만일 남측이 반공화국 인권결의안 채택을 결의하는 경우 10·4선언 이행에 북남간 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남측이 진심으로 10·4선언 이행과 북과의 관계 발전을 바란다면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남측의 태도를 예의주시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송 전 장관이 지난해 회고록을 통해 공개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적혀 있던 셈이다.

    문건에는 무궁화와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해 송 전 장관은 "문서에 찍힌 로고는 청와대 마크"라며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서 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건에는 '국정원장' '안보실장'이라는 자필이 메모돼 있는데 이는 "백종천 외교안보실장 글씨로 생각된다"고 송 전 장관은 부연했다.

    송 전 장관은 "아세안+3 회의차 싱가포르로 출국한 노 대통령이 2007년 11월 20일 오후 6시 50분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러 '인권결의안 찬성은 북남선언 위반'이란 내용이 담긴 쪽지를 보여줬다"며 "서울에 있던 김만복 국정원장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내용을 싱가포르에 있는 백종천 안보실장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노 대통령이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보여주는 수첩 메모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자고 해서"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그냥 갑시다. 기권으로. 북한에 물어보지 말고 찬성으로 가고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시간을 놓친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시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 접견을 마치고 나온 뒤 '내가 이런 정부에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나'라고 수첩에 메모했다.

    송 전 장관은 문건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도 문 후보가 대선 토론 등에 나와 계속 부인만 하니 어쩌겠는가"라며 "문 후보는 자신의 이야기가 잘못됐었다고 해야지 사실을 싹 깔아뭉갤 일이 아니지 않으냐. 이처럼 확실한데 어떻게 역사에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北核)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송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통해 2007년 11월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 과정을 폭로한 바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에 의견을 묻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비서실장은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냈다"고 밝혔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사전에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문 후보는 당시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논란 초기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라"며 즉답을 피하기도 했다. 

    지난해 송 전 장관과 문 후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논란은 진실공방으로 번졌고, 정치권에선 청문회 요구까지 나오는 등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될 조짐이 보였다. 당시 송 전 장관은 야권의 거센 반격에 "덧붙일 말 있어도 뺄 말은 없다"며 추가 폭로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엎으며 의혹 진실 규명은 흐지부지 됐다. 문 후보는 최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다른 후보들로부터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는지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 해명을 하며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 최근 문재인 후보의 '주적' 관련 발언으로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설상가상으로 대북결제 의혹을 둘러싼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대선 정국에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문 후보의 거짓말이 메모 공개로 들통났다"며 "안보팔이가 사기로 끝났다"는 비난이 나왔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이 말하며 "문재인의 특전사 안보팔이가 사기로 끝나는군요.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고 북한인권결의안을 북한에 물어보고 입장 정한 것까지 송민순 메모 공개로 들통났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하 의원은 이어 문 후보를 겨냥, "특전사도 자원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강제 징집된 것이었죠. 만약 특전사 자원해서 들어갈 정도로 안보관이 확실하다면 북한을 주적이라 칭하지 못하겠습니까"라며 "특전사 들어가신 전우님들,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고, 인권결의안 북한에 물어보고 찬성을 기원으로 입장 바꾼 가짜 안보꾼에게 쓴소리 한마디 해주십시오"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또 문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재인 후보는 지난 2월 9일 모 방송에 출연해 송민순 전 장관 회고록에 나오는 '대북결재'에 대한 자신의 논란은 '왜곡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송민순 전 장관이 오죽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당시 상황을 기록해 둔 '메모지'까지 공개하며 발끈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메모지가 공개되자 '뜨끔'한 민주당이 "전직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문재인 엄호에 나섰다"며 "'적폐세력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등 문재인 후보의 거짓말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문재인 후보가 더 이상 대선정국을 거짓말로 물들이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후보 측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송 전 장관의 문건 공개에 대해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주재했던 11월 16일 회의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정했다"며 "그리고 11월 16일 노 전 대통령이 기권 결정한 이후에 북에 우리의 입장을 통보했다. 그 이상 이하도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