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윤봉길 의사 한일투쟁사 '중요성' 공감… 상하이서 기념식 개최
  • ▲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황길수)는 29일 오전11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제85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제공
    ▲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황길수)는 29일 오전11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제85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제공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황길수)가 오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제85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85주년 기념식'에는 황길수 매헌기념사업회회장, 이경근 서울보훈청장과 유족대표 윤주웅박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광복회원, 윤봉길호 잠수함부대 작전관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같은 날 매헌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는 양재시민의 숲에서는 '독립운동 체험박람회'가 열린다. 

    앞서 매헌기념사업회와 상하이 홍커우구는 28일 중국 상하이 루쉰공원 매헌기념관 광장에서 윤봉길의사의 85주년 기념식을 한중 공동으로 개최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한국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한 반감으로 모든 한국행사에 불참했던 중국도 한중 양측의 한일투쟁사에서 윤봉길의사의 역사적 비중을 높이 평가해 ‘제85주년 기념식’만큼은 한중 공동으로 개최했다"고 밝혔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1908년 6월21일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과 모친 김원상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덕산보통학교 2학년 때 일본식민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한 후 서당에서 신구학문을 공부하고 19세에 야학개설, 농민독본저술, 농촌부흥운동 등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 운동을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거처를 옮긴 윤 의사는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일본의 일왕 생일축하와 상하이사변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을 투척해 일본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 등 일본군 수뇌부를 응징했다. 

    윤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침체됐던 항일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윤 의사의 의거는 중국의 장제스(將介石)주석이 김구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장제스 주석은 윤 의사의 의거에 감명받아 "중국민 4억명과 100만대군이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극찬했다.

    윤 의사는 의거 후 일본상하이 파견 헌병대에 체포돼 그해 5월25일 상하이파견 군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구금 됐다. 이후 가나자와시(金澤市)로 압송돼 1932년12월19일 25세의 나이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가나자와시 교외 공동묘지 쓰레기장 도로에 암매장됐던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발굴돼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으로 이장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1년 윤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