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청와대-공정위, 삼성에 특혜 제공”, 변호인단 “합병으로 순환출자고리 단순화”
  •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 사진 뉴시스
    ▲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본사. ⓒ 사진 뉴시스


    28일 오전 속개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진에 대한 뇌물공여 등 혐의 9차 공판에서, 박영수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으로 불거진 순환출자고리 해소 및 이에 따른 주식 매각과 관련해, 청와대와 공정위가 삼성 측에 과도한 특혜를 준 정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2차 독대 뒤인 2015년 12월 중순, 청와대 행정관이 공정위 사무관에게 연락을 취해 통합 삼성물산 주식매각 분량 축소를 사실상 요구했다며, 이런 사실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부정한 청탁)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 최순실씨 측에 430억원 대의 뇌물을 건넨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의 문자메시지 등을 제시하면서, 삼성 측은 공정위가 처분을 내리기 전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전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있었으며, 이 부회장은 우호지분을 포함 60%가 넘는 지분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대통령에게 청탁을 넣어 주식 매각 물량을 1천만주에서 5백만주로 줄이는 꼼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는 기존 변호인 측의 반론에 적절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날 특검이, 청와대가 삼성 측에 특혜를 주기 위해 공정위를 압박한 증거로 제시한 청와대 행정관의 압력 행사 정황도 치명적 결점을 안고 있다.

    특검의 논리대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포괄적인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를 했다면,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인한 순환출자고리 해소 및 이에 따른 주식 처분 물량 축소는 적어도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공정위위원장 급에서 다뤄질 내용이지, 일개 청와대 행정관과 공정위 사무관이 처리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 과정에서 청와대가 공정위에 압력을 행사해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을 제거해 줬다는 논리는,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검은 이날도 서증조사를 진행하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과정에서 펼쳤던 논리를 다시 들고 나왔다.

    특검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삼성SDI의 보유지분이 증가했고, 공정거래법 상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해 보유지분 중 일부를 매각해야 했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삼성 측에 특혜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이 자신의 보유지분을 지키는 혜택을 받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공정위는 통합 삼성물산 출범 직후 삼성SDI가 매각해야 할 보유지분 물량을 당초 1천만주라고 밝혔다가 900만주로 줄여줬고, 최종적으로 500만주 매각 결정을 내렸다.

    특검의 논리구성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한 꺼풀만 더 벗기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팩트가 나타난다.

    특검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대주주의 보유지분 비율이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부족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이 부회장을 비롯한 대주주일가가 보유한 지분비율은 39.85%에 달했다. 여기에 우호지분인 KCC 보유지분 8.97%와 삼성물산 자사주 지분 13.8%를 합치면 과반을 훨씬 넘는 62.62%에 이른다.

    통합 삼성물산 지분 1천만주를 지분으로 환산하면 5.28%에 해당한다. 이미 6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한 대주주 입장에서 본다면, 공정위가 1천만주 매각 결정을 내리든 아니면 그 절반인 500만주로 매각 규모를 줄여주든, 대통령과 ‘딜’을 할 만큼 절박한 사안은 아니다. 이 부회장이 최씨 측에 430억원이 넘는 뇌물을 넘기면서 요구할만한 대가로 보기엔 가치가 너무 작다.

    이미 지난 공판에서 변호인단이 밝힌 것처럼, 물산과 모직간의 합병이, 이 부회장이나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논의된 게 아니라,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주목한 두 회사 내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고민을 통해 구체화됐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변호인단은 20일 열린 이 사건 5차 공판에서 김종중 사장의 진술조서를 인용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꺼낸 사람은 제일모직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윤 사장이 이런 아이디어를 낸 배경도 설명했다.

    “윤 사장은 제일모직이 상장을 하려면 주식가격에 대한 적정수익 보장이 이뤄져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해외 인프라가 있는 물산과의 합병을 검토하자는 의견을 냈다.”

    변호인단은 당일 서증조사 의견을 통해 “특검이 인용한 진술조서를 보면, 윤 사장의 제안 이후 내부 보고와 결재를 거쳐 최지성 실장에게 합병안을 보고한 과정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이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두 회사간 합병에 반대의사를 나타낸 직후, 금융위 파견 청와대 행정관이 서면보고 형식으로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가, 삼성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이 부회장이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물산-모직 합병에 따른 주식매각 규모를 줄여달라는 청탁을 했을 것이라는 특검 측의 추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변호인단은 오후 공판에서 “물산과 모직 합병을 통해, 순환출자고리가 10개에서 7개로 줄고, 그 연결관계도 단순화됐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의 이런 발언은, 두 회사의 합병을, 이 부회장의 지배력 혹은 경영권 강화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특검의 판단과 달리, 순화출자관계를 완화 혹은 해소하는 순기능적 측면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변호인단은 공정위 전원회의가 여러 차례 논의 결과, 처분 주식의 물량을 500만주로 결정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특검은 이를 청와대의 압력에 의한 특혜라고 주장하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의 토론에 따른 법리검토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두 회사 합병 사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특검은 이를 청탁의 증거라고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도 청와대 행정관에게 보고를 했다”며, 특검 측 주장을 일축했다.

    삼성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공정위 측에 순환출자고리 해소 및 삼성SDI 보유지분 처분 관련 의견서를 낸 사실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김앤장 미팅결과 황OO 변호사가 미전실에 보낸 문자를 보면, 법률대리인이 여러 방법으로 의견을 개진한 거고, 결과를 알려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법률대리인이 전문가 자격에서 법적 견해를 밝히고 관계 부처에 설득 작업을 하는 것은 변호사의 고유한 업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변호인단은 “그 과정에 특별히 법이 정하는 불법요소가 없다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장충기가 황OO 변호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아무런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이 장충기로 하여금 (공정위의 처분 변경을) 관철시키라는 지시를 했다는 증거도 드러난 게 없다”고 밝혔다.

    다음 10차 공판은 다음달 2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312호 법정으로 장소를 옮겨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