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조변석개 극심… 낯빛 바꾸고 꾸짖는 행태에 기업은 황당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오찬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치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오찬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치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기업을 극심하게 압박하고 있다. 마치 기선을 선제적으로 제압하겠다는 듯 작심한 압박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압박으로 느낄 때는 느껴야 한다"고 장단을 맞추고 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는 기업이라는 뜻이 된다. 기가 막힌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겠다며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기간제법을 강행한 것은 노무현정권 때였던 2006년이었다. 이 때 파견근로가 가능한 업종을 32개로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되레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는 사태만 부른 것이다. 보수정권 들어서 이와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 한해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당수(黨首)로 있던 정당의 반대로 좌초됐다.

    결국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 사용 양상을 초래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있던 노무현정권 때 추진됐던 정책 때문이다. "당사자로서 먼저 반성"해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다.

    기업은 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에 따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영한 잘못밖에는 없다. 국정기획위원회라는 '점령군'들도 위법으로는 걸고 들어갈 여지가 없으니 "압박으로 느낄 때는 느껴야 한다"며 손목 비틀기를 하고 있다. '칼 안 든 강도'가 따로 없다.

    이처럼 자신들이 추진하고 입법한 정책에 따라 경영해왔을 뿐인 기업을, 정책을 조변석개한 뒤 정색하고 꾸짖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씽크탱크에는 대기업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한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또다시 거론하는 자까지 있다.

    이 역시 기업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과거 정권에서 적극적인 기업공개를 권유하며 대주주의 지분분산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80년초에 20%에 육박하던 30대 그룹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최근 4%대까지 내려앉았다. 정부의 압박대로 지분을 분산했더니, 이제는 낯빛을 바꾸고 "왜 그렇게 적은 지분으로 경영을 좌지우지하느냐"고 비판하는 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씽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통해 10대 기업에 한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자고 제안했다. 씽크탱크의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던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최근에도 잇달아 언론 인터뷰를 갖고 제도 부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내정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정치적 논란만 가중시킨다"며 "정작 필요한 재벌개혁 논의를 중단시키는 역작용만 야기하므로 다시는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29일 전체회의에 앞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29일 전체회의에 앞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안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리니 기업이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믿고 백년대계를 세워 경영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만약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부활한다면 1997년 전면폐지, 2001년 부활, 2009년 다시 전면폐지에 이어 두 번째 '부활'하는 셈이다.

    경영권에 직결돼 있어 기업의 최대 리스크 중의 하나인 지분 관계 정책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니, 어떻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기업 경영을 할 수 있겠나. 자괴감에 빠져 있을 기업인들에게 우리 국민의 미래 먹고살거리에 투자하라고 권하는 것은 과욕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있던 노무현정권 때 폐지됐다.

    2011년 무역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민간기관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업계 자율로 업종을 선정한다는 명분으로 부활했는데, 국내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두고 안방 시장을 외국계 기업에 내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신규 출점을 못하는 사이, 외국계 제빵·제과업체들은 발빠르게 국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한 프랑스계 제빵·제과 프랜차이즈는 프랑스의 출점점포 수보다 국내 출점점포 수가 더 많아졌을 정도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는 현재 동반성장위가 선정하고 있는 중소기업적합업종을 법제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제화를 하더라도 외국계 기업은 규제할 방법이 없다. 만약 입법으로 규제를 시도하면 WTO 제소와 무역보복을 당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을 믿고 고용·경영·투자를 해온 기업들은 하루 아침에 '반성해야 할 대역죄인'이 되고, 정작 정책을 추진해왔던 당사자는 민간 위에 군림하려는 태세다.

    김진표 위원장은 심지어 "작은 정부가 좋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발언까지 했는데, 노무현정권 때였던 2003년 나왔던 희대의 망언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시절로 되돌아가, 나라를 '관치의 천국'으로 오염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무위원 오찬간담회에서 "정권은 유한하지만 조국은 영원하다"고 했다.

    전쟁의 폐허로 뒤덮인 세계 최빈국이었던 조국을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굴기(倔起)하게끔 이끌어온 것이 기업이다. '코리아'는 몰라도 '삼성' 'LG'는 안다고 하지 않는가.

    정권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하다. 주주나 경영자, 회사법인은 바뀔 수 있어도 국민이 먹고살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활동은 영원해야 한다.

    유한한 '5년짜리' 정권이 관치의 헌 창을 꺼내들다 국민의 50년 먹고살거리를 마련해야 할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교각살우의 우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권 초기에 기업으로부터 반성문을 걷어들이다, 5년 정권이 끝났을 때 죽어버린 경제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해 있는 국민들을 향해 "내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말이나 했느냐"고 변명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