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채로 아픔나누는건 사후약방문, "사람이 먼저" 자세로 치수 나서라
  •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수해를 입은 충북 지역의 블루베리·복숭아 등을 넣어 만든 과일화채를 맛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수해를 입은 충북 지역의 블루베리·복숭아 등을 넣어 만든 과일화채를 맛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15일 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조금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하늘이 꺼진 것 같아 퍼부어 물난리를 겪은 경성 일대는 다시 물 세례를 받게 됐다. 16일 오후 9시부터 한강물은 다시 불기 시작하더니 17일 오전 6시 경에는 벌써 30척이나 물이 불어 동서이촌동과 마포 일대는 물결치는 붉은 바다로 변했다.

    마포 320호·서강 200호·공덕 260호의 피난민은 마포보통학교에 200명, 마포청년회에 150명, 동집회소에 약 20명을 수용했다. 이촌동 방면은 불과 6시간 동안에 30여 척의 물이 불어 동서이촌동의 550호는 전부 침수해 주민들은 용산 기차 안과 이촌동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양영학교로 피난했는데 잠 못 자고 먹지 못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구제소에 쓰러진 듯이 누워 있는 이촌동 피난민은 8대의 객차에 700명을 수용했으며, 80명은 양영학교에 수용했다.

    한강 건너 여의도에는 125호가 있는데 식량이 결핍해 굶는 사람이 80여 명에 달했던 바 15일에 동우구락부에서 130인에게 쌀 4홉을 나눠줘 겨우 연명케 했는 바 이번 비에 또 물에 잠겨 교통할 수가 없어서 시급히 구제하려면 인천에서 증기선을 청해야 되겠으나 증기선은 도저히 올라올 수가 없으므로 군청에서는 구제책을 강구 중이다."

    "창원군 대산면 촌정농장 제방이 물로 말미암아 15일 오전 5시 30분에 무너져 농장을 중심으로 부근 일대의 주민 6000여 명의 생사가 불명하게 됐다는데, 급보를 접한 창원군수와 마산부윤은 급거 현장에 출동해 구제책에 노력 중이다. 경남 내무부장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자세한 바는 아직 불명이나 부근 3000호가 침수했으며 교통불통으로 주민의 생사는 불명하다."

    1925년 이른바 '을축대홍수' 때 〈동아일보〉의 기사들이다.

    우리나라의 산하(山河)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던 이 시절에는 한강·낙동강과 같은 큰 강들도 여름에 큰 비만 오면 물이 넘쳐 수해가 나기 일쑤였다. 마포라고 하면 경성전차의 종점이 있던 번화한 동네인데도 비가 오면 물이 제방을 넘어 주민들이 보통학교로 피신했다.

    수해가 한 번의 여름철에 한 번 나고 마는 게 아니라,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매번 물이 넘치므로 여의도의 주민들은 지난 홍수 때 구제책으로 지급된 쌀 4홉으로 버티다가 다시 물이 넘어 교통이 끊어지니 말그대로 모두 생사가 경각에 달리게 된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것이 하천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을 때, 우리 선조들이 여름철마다 겪어야 했던 비참한 모습의 일단이다.

    아무런 치수 대책이 없어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였던 일제 시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이 된 이후에도 홍수 피해는 이어져 여름철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수해 이재민을 위한 성금을 모으는 게 연례 행사였다.

    그러다 마침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나타나 대대적인 치수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벌였다. 이후로는 적어도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의 '4대강' 유역에서의 큰 범람은 역사 속의 일이 됐다.

    올 여름 이례적인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졌는데도 수해는 충북과 충남의 일부 기초자체단체에 국한됐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진천·증평·보은 등에서 더 심한 피해를 입은 읍·면도 있는데, 기초자치단체 전체로 보면 기준에 미달해 특별재난구역을 지정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4대강 사업이 없어 비가 오면 오는대로 온갖 지천·지류에서 넘친 물이 본류로 흘러들어왔다면 비단 읍·면이 잠기는 것으로 끝났겠는가. 옛날의 수해 때에는 한강의 가장 큰 댐 중의 하나인 소양강댐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시(市)나 군(郡) 전체가 물바다가 되는 일도 흔했다.

    수해가 나더라도 "기초자치단체 전체로 보면 기준에 미달"한다고 불평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온 게 다 4대강 사업 덕분인데, 애써 강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쌓아놨더니 이걸 다 때려부숴 여름만 오면 물이 넘던 '자연의 상태'로 되돌리자는 '재자연화'를 부르짖는 무리들이 있다.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면 당장 국민들이 수해로 고통받을텐데 "사람이 먼저다"라더니 사람을 이재의 위험 속으로 내모는 정책이다. 수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내팽개치는 정부도 정부인가, 이런 나라도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수해 대책을 논의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아픈 마음을 나눈다"며, 피해 지역의 낙과로 만든 화채를 먹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수해를 입은 충북 증평의 블루베리, 음성의 복숭아 등을 넣은 과일 화채였다.

    뭔가를 보여주는 효과는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낙과 화채를 먹는다고 해서 실제로 주민들에게 뭔가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에 내려가는 특별교부금이 실제 주민들에게 혜택이 가는지 정무수석에게 묻던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나라다운 나라'의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수해가 났을 때 그 지역의 과일을 구해 만든 화채를 먹으며 "아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수해가 나지 않게끔 치수 사업을 잘하는 것이다.

    4대강의 보를 때려부수고 '재자연화'를 한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5년 임기의 여름마다 전국 8도의 특산 과일을 넣어만든 과일 화채를 번갈아가며 먹어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대통령으로서 "사람이 먼저"라는 정신을 살려 항상 치수 사업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없는 '재자연화'를 통해 우리 국민들을 과거 수해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던 시절의 삶으로 내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