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없는 대한민국 정체성 논쟁…국론 분열 우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식 전에 백범 김구 묘역을 참배했다. ⓒ뉴시스 DB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식 전에 백범 김구 묘역을 참배했다. ⓒ뉴시스 DB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식 직전에 백범 김구 묘역을 참배했다. 최근 불거지는 건국일 논란에 대해 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에 힘을 싣는 행보로 보인다.

    회색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차려입은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전, 백범 김구의 묘역을 참배한 뒤,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와 안중근 의사 가묘, 임정요인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 전에 백범 김구 선생 묘소 등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박수현 대변인은 "문 대통령 님이 전날 독립유공자 오찬 중 2019년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말씀하셨고, 오늘 아침 보도에는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더라"라며 "참배를 처음 한 것도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실 때마다 각종 행사 제일 앞줄에 유공자나 애국자들이 훈장을 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셨다"며 "애국을 국민들에게 선양하시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참전용사 등에 대한 보훈을 강화해야 한다고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묘소 앞 왼편 텐트 아래 설치된 방명록에는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건국 논쟁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보수·진보 진영 모두에 오래된 논쟁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이 문제가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진보진영은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 건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5년 11월 5일 당시 문재인 대표는 "1948년도에 건국이 되었다면 그 앞에 있었던 일제식민지배, 항일운동, 친일 활동 모두가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가 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도종환 의원 역시 비슷한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2015년에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일이 아닌)대한민국이 다시 재건된 날"이라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진영은 우리나라 건국 시기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헌국회를 세운 1948년 8월 15일이라 주장한다. 국가가 성립하려면 영토·국민·주권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 일제 강점 하에서는 영토와 주권이 없어 정식 국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8월, 1919년을 건국날짜로 생각한다면,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논란이 됐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건국일 논쟁에 문 대통령이 다시 뛰어들면서,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건국절을 만드는 문제는 (건국일 논쟁과는 달리) 또다른 이야깃거리가 된다"며 "나 개인적으로는 건국절을 만들어야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하지만 얼마 전 혁신위 이름으로 낸 것에는 건국절은 없고 48년이 건국일이라는 이야기는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계 일각에서도 1919년 건국설이 있는데, 1948년 건국한 것은 우길 수 없는 '팩트'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국민·영토·주권 외에도 주변 국가들에게 외교적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1919년에 어디가 성립했느냐"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시민단체 출신으로 국정 역사교과서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 역시 당 대변인이 아닌 사견을 전제로 "1948년 건국의 기산점을 뒤흔드는 일은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해선 안 될 행동"이라고 못 박았다.

    전 의원은 "마치 임시정부의 공적이나 가치를 폄훼하거나 독립 유공자를 매도하는 분열의 정치로 끌고가고 있다"며 "정작 DJ·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제2의 건국을 언급하면서 첫 건국은 1948년이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의 역사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것이냐"며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한쪽만 끌고가는 그런 정치는 그만둬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를 언급했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007년 광복 62주년 경축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가리켜 "3년 뒤 이날, 나라를 건설했다.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