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우재 작가는 표피적으로는 거대 담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묻어나는 담론을 이야기한다. 특별한 수정 작업 없이 초고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그와 오랜만에 만나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

    김광보 연출은 21일 오후 세종문회회관 예술동 3층 연습실에서 열린 '옥상 밭 고추는 왜' 제작발표회에서 장우재 작가와 2006년 '악당의 조건' 이후 11년 만에 재회한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10월 13부터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Ethics(윤리들) VS. Morals(도덕들)'라는 가제를 달고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를 공연한다.

    김 연출과 장 작가는 1994년 '지상으로부터 20미터'로 나란히 데뷔했으며, 이후 '열애기'(1997), '악당의 조건'(2006)에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낡은 단독빌라 옥상 텃밭 고추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중심으로, 도덕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장우재 작가는 가제에 대해 "이제는 도덕과 윤리를 구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도덕은 사회 전체가 유지되기 위해 '사람은 이래야 한다' 모두가 지켜야하는 커다란 옳은 것이다. 윤리는 개인이 '뭘 지키며 살아야 할까' 스스로의 기준을 찾는 삶에 대한 태도"라고 설명했다.

    장 작가는 작품을 집필하면서 독일녹색당을 창당한 페트라 켈리가 68혁명 당시 연설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했던 말이 힘이 됐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의 문제이고 동시에 우리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예전에 살던 연립빌라 옥상에서 실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극을 썼다. 당시 아주머니가 고추를 절반 이상을 따서 다툼이 있었는데, 그 외에는 다 픽션이다. 현재 우리가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이 일상 안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다."

  •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현태' 역에는 최근 연극 '프로즌'에서 연쇄살인범 랄프 역을 맡아 극한의 감정 표현으로 주목받은 이창훈이 캐스팅됐다. 전화국을 정년퇴직한 후 부동산 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중인 '현자' 역은 고수희가 맡아 현태와 대립각을 이룬다.

    서울시극단과 처음 작업하게 된 고수희는 "대본을 처음 읽고 현자라는 역할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센 아주머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근데 연습을 거듭하면서 결국 내 어머니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쁘거나 독하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다. 모두의 엄마이거나 이모 같은 모습으로 공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미니멀리즘의 대가'답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빌라가 배경이지만 방 3개와 그 위에 옥상 공간을 설정해 무대를 압축했다. 또, 총 24명의 배우들을 등장시켜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낼 예정이다.

    그는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한 후 선보이는 다섯 번째 작품이다. 창작극을 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서울시극단이라는 공공기관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옥상 밭 고추'가 공공성과 연극의 재미, 생각할 거리를 잃지 않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극단은 공연 연계 특강인 '스테이지 텔링'을 오는 23일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진행한다. 장우재 작가가 일일 강사로 나서 작품 속 인물과 공간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세종문화티켓과 인터파크티켓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 [사진=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