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靑브리핑 후 '자주국방 파'의 여론조성…현실적 문제 모두 외면
  • 지난 21일(현지시간) 美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1일(현지시간) 美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내 언론들이 지난 22일부터 청와대 발로 “한미 정상은 한국이 최첨단 군사자산을 도입하는 것에 공감하고 이를 지원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이를 두고 “조만간 한미 간에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논의할 것”이라거나 “순항미사일 또는 F-35 스텔스 전투기 추가 도입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보도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하지만 한국 언론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측의 이야기는 그저 ‘상상’이자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일단 청와대의 발표를 되짚어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美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이 최첨단 군사자산을 획득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한미 연합의 방위태세 유지 및 강화를 이룬다는데 원론적인 합의를 했다고 한다.

    청와대 브리핑 내용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美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했고, 이를 위해 한국의 최첨단 군사자산 강화,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대한 美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등에 합의했다고 한다.

    여기에 핵추진 잠수함 도입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들이 ‘핵추진 잠수함’ 이야기를 계속 해대는 것은 군 일각의 요청과 ‘자주국방에 대한 환상’, 그리고 전략무기에 대한 이해도 부족 탓이다.

    현재 전 세계에 핵추진 잠수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다. 모두 자체 기술로 생산했다. 이들 중 공격용 잠수함(SSN)만을 가진 나라는 없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대외적 도발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임계철선’ 역할을 맡아 주둔하고 있고, 핵추진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SSBN)과 핵추진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SSCN), 핵추진 공격 잠수함(SSN) 등 100여 척에 가까운 잠수함 전력을 가진 미군이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 2016년 8월 한국도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한 KBS 뉴스. ⓒKBS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6년 8월 한국도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한 KBS 뉴스. ⓒKBS 관련보도 화면캡쳐.


    인도의 핵추진 잠수함 ‘아라한트’급은 2009년 7월에 진수한 뒤 2016년까지 전력화를 위한 시험 운항을 했다. 인도는 그 전에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으로부터 ‘찰리’급 핵추진 공격 잠수함을 리스 했다. 인도는 여기서 얻은 핵추진 잠수함 운용 노하우와 자체 핵 발전 기술을 바탕으로 15년 이상 연구를 거듭해 ‘아라한트’급 잠수함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경우 자국산 핵추진 공격 잠수함을 수출하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다른 핵추진 잠수함 보유국들이 이를 좋게 보지 않고 있다. 브라질 등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당초 계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프랑스로부터 핵추진 잠수함을 면허생산 한다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한국이 도입하려던 프랑스제 소형 핵추진 잠수함은 계획대로라면 이미 취역과 수출이 활발해야 하지만 아직도 개발을 끝내지 못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무기-탄도미사일 공격 위협이 목전에 있으므로 직수입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안보 관계자들이 대부분 ‘자주국방’을 외치는 사람들로, 다목적 헬기 ‘수리온’이나 K2 전차 등과 같이 분명 ‘면허 생산을 통한 국산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지금부터 개발을 서두른다고 해도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린다. 그 사이에 북한의 위협 수준이 현상을 유지할까.

    미국 입장에서 현재 상황을 본다면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을 건넨 뒤에 한반도가 적화통일 되면 북한 김정은이 이런 기술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어떻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다른 문제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미국이 핵추진 잠수함 수출을 허용하고, 한국이 도입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즉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생길까. 아니다. 한국 정치권과 언론들, 일부 군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마치 탱크나 자주포, 혹은 미사일 한두 대 사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현대 무기는 기술 집약체로 제대로 운용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그 가운데서도 숙련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무기가 해군과 공군의 전략자산, 즉 정찰위성과 전략 핵무기, 핵추진 잠수함,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이다.

  • 러시아 전략 잠수함(SSBN) 기지의 모습. 한국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미래 한국해군은 이렇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해군관련 보도화면 캡쳐.
    ▲ 러시아 전략 잠수함(SSBN) 기지의 모습. 한국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미래 한국해군은 이렇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해군관련 보도화면 캡쳐.


    美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지스 구축함의 시스템과 무기를 제대로 다루는 데 필요한 기간은 최소 6년, LA급 핵추진 공격 잠수함은 최소 7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승조원들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 분량만 2만 페이지 이상이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자체 건조하지 않고 직수입한다고 해도 제대로 대북 억지력을 발휘하려면 최소한 4년 이상 걸린다는 뜻이다.

    정찰위성의 경우 단순히 우주에 띄워 신호를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위성을 운영 관리하는 인력, 유지 보수할 인력, 영상을 처리·분석하는 인력,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할 하드웨어가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이런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박사급 이상의 고급 인력들이다. 이런 사람들도 정찰위성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교육을 받는다.

    한국 정치권과 언론들, 군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는 북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감시정찰자산과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무기이고, 앞으로 개발해야 할 자산도 무기를 실어 나를 ‘플랫폼’이 아니라 타격무기 그 자체 아닌가.

    지금 한국 정치권과 언론들, 국방부의 ‘최첨단 무기 도입’ 주장은 청소년들이 슈퍼카 한 번 구경한 뒤에 갖고 싶다고 투정하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