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국 칼럼] 문명화되지 않은 전체주의 국가의 야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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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은 주로 권력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서 다양한 사회 현상을 권력을 위한, 권력에 의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권력은 일종의 맹독성 마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아무도 견제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한번 갖게 되면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대개 독재자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물러나기 보다 민중봉기나 외부의 응징으로 비참하게 역사의 뒤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선 떠오르는 얼굴이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루마니아의 챠오셰스쿠 등이며 다음 타자는 북한 김정은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역사상 권좌를 노리거나 이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종종 정신병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권좌를 노리고 아버지를 시해(弑害)한 아들이나 형제간 파국은 이미 오래된 드라마 소재다. 국내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2002)’ 역시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이 된 아서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심지어 왕이 되기 위해 어머니가 자식을 죽인 경우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는 경쟁자 위치에 있는 후궁을 살인자로 모함하기 위해 어린 딸을 죽이고 왕 앞에서 오열하다 졸도하는 연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부모 자식 사이에도 칼을 겨눈다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는 훨씬 더 잔인무도한 짓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권력자의 입장에서 공포 정치야 말로 가장 손쉽게 권좌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며, 이는 흔히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그 결과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독재국가에서 공포정치의 완결판은 대개 정치범 수용소로 구체화된다. 즉, 이 곳은 입소에서부터 납치와 불법감금으로 시작되며, 기본적 의식주와 보건·위생의 박탈, 고통스러운 노역과 집단 생활 강요, 고문 등 각종 학대, 적법 절차없는 처형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권탄압이 총 망라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나찌 독일 외에도 집단 수용소를 운용한 사례로 1976년 공산화된 베트남을 들 수 있다. 특히 패망 전 월남 사람들은 북베트남(공산 월맹)에 흡수통일 되기 이전 시장경제와 자유를 누렸던 경험상 사유재산 몰수 등 급진적인 공산화 정책에 반발했고 호치밍(胡志明) 정권은 이들을 이른바 ‘재교육 캠프(Re-Education Camp)’라 불리는 집단수용소로 모아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을 강요했다. 이들은 밀림의 전갈·뱀·말라리아 및 각종 풍토병에 그대로 노출됐으며 오랜 시간 일어나지 못하게 결박함으로써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만드는 끔찍한 형벌도 행해졌다. 물론 끝까지 공산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각종 독극물 주사와 공개처형도 거리낌 없이 자행됐고 그 결과 최소 30만에서 많게는 2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도 잘 아는 보트-피플은 이러한 폭정을 피해 기약없이 뗏목에 의지해 탈출한 이들로 1992년까지 약 80만명이 목숨을 걸고 자유를 향한 탈출을 감행한 바 있다.

    북한은 해방직후 공산화 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던 1947년부터 지주, 친일파 심지어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가뒀고 6.25 남침 이후에는 남한 국군에 부역한 이들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이후 1956년 최창익 등이 김일성을 주석직에서 끌어 내리려다가 실패한 이른바 ‘8월 종파사건’ 이후 정치범 수용소는 관리소, 교화소, 집결소 등으로 불리면서 본격적으로 정적들을 탄압하는 공포정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정치범 수용소는 크게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뉘는데 후자는 함남 요덕 수용소(15호)를 지칭하며 그들 기준으로 ‘경미한’ 죄인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해 처벌하는 곳이다. 그래서 정치범 수용소를 증언하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이곳 출신이다. 반면 전자는 이른바 중범죄인 등 ‘완전타도대상’을 종신형에 처하는 생지옥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로 개천(14호), 북창(18호), 화성(16호), 청진(25)호가 운용중이며 최근 증언에 따르면 15만에서 20만명이 수감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수용소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영양실조와 위생·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수감된 강철환씨는 자유아시아 방송(Radio Free Asia)과의 인터뷰에서 수용소는 전적으로 배급에 의지하며 하루 옥수수 500-600g을 받게 돼있으나 여기 저기 세금내듯 떼이고 나면 실제로 300g과 소금으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강도 높은 노역이 더해지면 영양실조와 정신적 피폐는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많은 이들이 감방에 제대로된 화장실이나 생활 용수가 없어 용변을 위생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세균성 질병이 만연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같은 방송에서 또 다른 탈북자는 새로 입감된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간이 통상 6개월 정도라고 증언했다.

    간수 역할을 하는 이른바 ‘경비병’들은 죄수들이 사람이 아니므로 학대와 체벌 역시 정당한 것으로 교육받는다. 즉 경비병들은 수용소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자의적이고 기분에 따라 수감자들을 폭행하기도 하고 다른 수감자들에게 특정 수감자를 집단 구타하라고 지시하는데 불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연약한 여성 수감자에 대한 성적 학대는 말할 것도 없다. 2017년 9월 19일자 국민통일방송의 ‘라디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출연한 탈북자 박모씨(29)는 ‘보위원(간수)’이 여성 수감자를 강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임신했을 경우 임신한 여성을 처형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상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는 어디까지나 김정은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므로 강력한 연좌제를 기본틀로 하고 있다. 즉, 체제에 저항하고 싶어도 그 결과로 아무 죄 없는 자식과 부모가 고통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부모의 ‘불경죄’에 따라 수감된 아이들은 평생을 수용소에서 보내야 하며, 지속적으로 부모를 증오하도록 훈련받는 반인륜적 학대를 받는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박주용씨의 경우도 본인이 아닌 삼촌의 죄로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공개처형의 경우도 총살에 앞서 동료 수감자들이 돌아가며 사형수에게 돌을 던지도록 강요하며 종종 이 과정에서 총살전 사망한다고 전했다.

    비록 폐쇄된 북한에서 비밀리에 운용되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증언만으로도 그 참담한 실상을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정치범 수용소는 한마디로 문명화되지 않은 전체주의 국가의 야만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권력을 견제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법치와 자유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한편, 정치범 수용소의 만행이 기본적으로 북한 김정은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간의 경험상 단지 국제사회가 선의를 가지고 김정은을 설득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칼을 겨눌만큼 무서운 것이 권력욕이라면 결국 정치범 수용소를 계속 유지했다가는 내 권력이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위기 의식을 주는 것 외에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양일국 한국자유총연맹 대변인, 정치학 박사(국제정치학 전공)

    ※위 글은 필자가 월간 '자유마당' 10월호에 올린 기고문을 수정한 것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