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JTBC 직원에게 벌금형 선고한 원심 파기"JTBC, 지상파 방송 이후 출구조사결과 보도..영업비밀 사용 아냐"
  •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벌금형)을 받은 JTBC 직원들이 항소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는 20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JTBC 김OO(41) PD와 이00(38) 기자에게 각각 벌금형(8백만원)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상파 3사는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비밀유지 각서를 쓰는 등 보안 유지에 노력을 했으나, 선거 당일 오후 6시 이후부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조사 결과를 유출할 수 있도록 했다"며 "따라서 당일 오후 6시 49초에 예측조사 결과를 방송한 JTBC에게 영업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하긴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비공지성(비밀성)이 상실되는 시점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 전체가 다 공개되는 시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해당 정보가 방송될 때마다 상실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지상파 중 한 방송사(MBC)에서 예측조사 결과를 보도한 이후 선거구별 광역단체장(서울시장) 예측조사 결과를 내보낸 JTBC가 무단으로 조사 결과를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고, 김OO PD와 이00 기자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비공지성을 상실하기 이전에 영업비밀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단, 출구조사 자료를 유출한 여론조사 기관 임원 김OO(48)씨에 대해서는 영업비밀 무단사용 혐의를 적용,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지난 6월 23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회부된 JTBC 김OO PD와 이00 기자에게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인정된다며 각각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사전에 입수한 정보는 지상파 3사의 영업비밀에 해당되며 입수 당시 이를 사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뒤 "실제로 이를 방송한 행위는 방송사 간 공정경쟁 질서를 무너뜨려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두 사람을 기소한 검찰은 지상파 3사가 거액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 얻어낸 예측조사 결과를 사전에 취득, 지상파 방송 이전에 내보낸 이들의 행위를 영업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간주했고 1심 재판부 역시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무단으로 입수한 예측조사 결과를 선거 당일 오후 5시 43분 자사 방송시스템에 입력해 방송 준비를 마쳤고, 일부 방송사보다 먼저 해당 결과를 내보낸 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해석은 달랐다. 비록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전체가 방송되기 전이었으나, MBC에 의해 서울시장 예측 결과가 전파됐기 때문에 JTBC가 동일한 내용을 방송한 것은 영업비밀을 사용한 게 아니라고 판시한 것. 이는 재판부가 '비공지성' 상실의 시점을, 지상파 3사가 예고한 선고 당일 오후 6시 정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KBS와 SBS의 경우, MBC와는 달리, 일부 지역 조사 결과를 JTBC보다 늦게 보도하는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데 있다. 이들 방송사는 JTBC로 인해 '뒷북 보도'를 하는 망신을 당하고 말았지만, 2심 재판부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오후 6시 정각에 이미 해당 자료의 비공지성이 상실됐기 때문에 JTBC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또 있다. 앞서 지상파 3사가 JTBC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JTBC 측에 책임을 묻는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이다. 'JTBC와 관계자들에게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책임이 없다'며 면죄부를 준 형사재판부와는 달리, 대법원은 "JTBC가 명백히 방송사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

    지난 6월 15일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는 "선거 당선자 예측조사 결과는 지상파 3사의 투자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라며 "투표종료 직후 공표해야 정보 가치가 가장 높은 예측조사 결과를 방송사 동의도 없이 (방송사와)거의 동시에 공개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JTBC의 당선자 예측조사 결과 보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에 반하는 만큼, 출구조사에 소요된 비용을 배상해야한다"며 '지상파 3사에 2억원씩 총 6억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지었다.

    방송가에선 JTBC의 보도 행위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을 위반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 동일한 혐의로 회부된 항소심 형사 재판에서 이를 부정하는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된 것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민사 소송의 경우 영업비밀 누설보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에 더 초점이 맞춰졌던 반면, 형사 재판에선 영업비밀 누설 여부가 더 관건이었던 것 같다"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JTBC 측에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이 매우 합리적이었다는 중론이 지배적이었던 것만큼, 차후 대법원에서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으로 '출구조사 결과' 유출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2014년 3월 방송사 공동예측조사위원회를 구성, 6.4지방선거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는 '당선자 예측 출구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조사용역기관과 별도의 용역 계약을 체결한 지상파 3사는 선거 당일 648개 투표소에 대한 출구조사와 전화조사를 병행·실시한 조사 결과를 집계했다.

    그런데 조사용역기관 관계자 김OO(48)씨가 사건 당일 자사의 영업비밀 보호 의무를 어기고 방송 3사가 24억원의 비용을 투자해 만든 지방선거 예측조사결과를 모 기업 관계자인 김OO(45)씨에게 전달했다.

    이와 비슷한 시각에 '문제의 자료'를 입수한 모 언론사 기자 김OO(40)씨는 동료 기자인 이OO(32)씨에게 문건 일체를 카카오톡으로 넘겼다.

    이씨는 해당 자료를 '마이피플' 채팅방에 올렸고, 마침 채팅방에 참여 중이던 JTBC 기자 이OO씨가 '지방선거 예측조사결과'를 내려 받은 뒤 데스크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상파 3사가 조사용역기관을 통해 작성한 '지방선거 예측조사결과' 자료를 입수한 JTBC는 2014년 6월 4일 오후 5시 43분경, 해당 자료를 JTBC 선거방송시스템에 입력했다.

    JTBC는 이날 오후 6시 정각 4개 광역단체장에 대한 자체 예측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6시 49초부터 '지상파 출구조사'란 타이틀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예상득표율을 공개했는데, 이는 MBC 뉴스보다 3초 정도 늦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KBS와 SBS는 일부 지역에서 JTBC보다 조사 결과가 늦게 공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지상파 3사는 지난 2014년 8월 "방송 3사가 조사용역기관을 통해 도출한 6.4 지방선거 예측조사 결과를 지상파 방송이 보도하기도 전에 JTBC가 사전 입수해 내보낸 것은 명백한 도용이자 영업비밀을 침해한 행위"라며 손석희(61) JTBC 보도부문 사장 등 방송 관계자 다수를 검찰에 고소하고, 출구조사에 소요된 비용 전액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15년 7월 29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 등 JTBC 관계자 6명을 포함한 10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이근수)는 지난해 3월 24일 ▲당시 JTBC 태스크포스팀을 이끌었던 김OO(41) PD와 ▲팀원 이00(38) 기자 ▲JTBC 법인 ▲출구조사 자료를 유출한 여론조사 기관 임원 김OO(48)씨를 각각 영업비밀 무단사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지상파 3사가 24억원의 비용을 들여 조사한 출구조사 결과를 JTBC는 '정당한 인용 보도'의 한계를 넘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JTBC는 '지상파 3사에서 조사 결과를 모두 발표한 뒤 인용 보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전에 지상파 3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입수해 방송시스템에 입력한 뒤 3사와 동시에 보도하거나 일부 자료를 먼저 보도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JTBC 임원진이 기자들에게 '출구조사 결과를 무단 사용하라'고 지시했거나 묵인했다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같은 혐의로 송치된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JTBC 김OO(62) 공동대표 이사 ▲오OO(54) 보도총괄 ▲김OO(53) 부국장에게 각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원 "출구조사 무단사용..지상파 3사에 12억 배상하라" 판결


    한편, 민사소송을 심리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는 2015년 8월 21일 열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선고 공판에서 "JTBC는 각 방송사에 4억원씩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초 지상파 3사는 손해배상액을 24억원으로 산정했으나, 재판부는 기밀유지 서약 위약금 등을 참고해 요구 사항의 절반 수준인 12억원을 JTBC가 물어야 할 배상금으로 책정했다.

    재판부는 "지상파 3사는 예측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 24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썼고 기밀유지를 위해 각서를 쓰는 등 정보 창출을 위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따라서 예측조사 결과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JTBC는 이 과정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고 소속 기자가 사적으로 이용하는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개표방송 전 조사 결과를 입수했다"면서 "이는 공정 거래 질서에 반하는 불법행위이자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당시 지상파의 로고가 나오도록 방송했다'는 JTBC 측의 해명과 관련, "아무리 JTBC가 자료 출처를 '지상파 3사'로 표기했다 하더라도, 방송 시점을 감안하면 이를 '정당한 인용보도'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JTBC가 방송사에 손해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원심은 유지했으나, ▲JTBC가 예측조사 결과 상당 부문을 지상파 3사 발표 이후에 보도했고 ▲해당 수치가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임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12억원의 절반인 6억원으로 책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