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이 낳은 21세기 거장' 사이먼 래틀(62)이 16년간 이끌었던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마지막 내한공연을 펼친다.

    '금호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의 일환인 '2017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이 11월 19~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1984년 카라얀과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05년·2008년·2011년·2013년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이번은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서 함께하는 마지막이자 6번째 내한공연이다.

    래틀은 19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에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는 관계이다. 그 동안 상임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의 색깔, 레퍼토리, 지역사회와의 교감 등 유연성과 함께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범위를 확장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1882년 창단한 베를린 필은 한스 폰 뷜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전설적인 명장들이 거쳐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다. 래틀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끝에 2002년 9월 악단의 6대 수장으로 부임했다.

  • 영국 리버풀 출신의 래틀은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74년 존 플레이어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3년 1월 단원 총회 석상에서 베를린 필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그는 2018년 러시아 지휘자 카릴 페트렌코에게 예술감독 자리를 물려주고 임기를 마친다.

    본거지인 영국 런던심포니(LSO)로 자리를 옮기는 래틀은 "베를린 필은 이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됐다. 후임자인 페트렌코와 함께하는 또 다른 여행을 관중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싶다. 우리는 서로 호기심이 많고 레퍼토리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며 베를린 필을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16년은 미국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뀐 시간이다. 음악과 관련돼 장기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베를린 필은 저에게 소중하지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 맡아 새로운 단계를 시작해야 한다"며 "영국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에 18년 있었는데 '진짜 오래 있었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베를린 필에서는 '왜 벌써 떠나세요'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19일 공연에서는 R.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20일에는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진은숙 '코로스 코르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이 연주된다. 당초 협연이 예정돼 있던 피아니스트 랑랑이 왼팔 건초염으로 연주를 취소하면서 조성진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 조성진(23)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베를린 필과 협연한 국내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사라 장·정경화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지난 4일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공식 데뷔무대를 가졌으며 이어 프랑크푸르트, 홍콩에서 협연을 마쳤다.

    이날 조성진은 "랑랑을 대신하게 돼 큰 영광이었고 정말 꿈같은 11월이었다. 오늘 투어의 마지막 연주라 서운하기도 하다. 첫 번째 리허설을 11월 1일 했다. 피아노에 앉고 옆에 래틀이 지휘를 하는데 '내가 지금 DVD를 보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그만큼 굉장히 설렜다"며 협연 소감을 말했다.

    또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이 카네기홀 공연과 베를린 필과의 협연이었다. 두 꿈이 빨리 이뤄지게 돼 놀랐지만, 앞으로 베를린 필과 카네기홀에서 다시 초청받는 것이 또 다른 꿈"이라며 "음악가로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보여주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꿈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건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전했다.

    래틀은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은 나의 오래된 친구이고 아끼는 피아니스트다. 자신을 포함해 비판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그가 조성진에 대해 '정말 좋은 피아니스트'라고 칭찬했을 때 어디가 아픈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젊고 위대한 건반의 시인과 연주하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며 비화를 소개했다.

    폴란드의 크리스티안 짐머만(61)은 야신스키를 사사하고 카토비체 음악원에서 배웠다. 18세라는 최연소 참가에도 불구하고 1975년 제9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결선 때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정경화에게 연락해 "결선에서 협주곡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나말고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 래틀은 매 시즌 새로운 현대음악을 초연해왔고 '스타워즈', 'E.T' 등 영화음악을 연주하며 악단에 혁신적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진은숙의 작품 '코로스 코르돈'은 베를린 필이 이번 아시아 투어를 위해 위촉한 곡이다. 11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우주의 역사, 생성과 소멸이라는 과정을 담았다.

    "진은숙의 음악은 센세이션한 보석함 같다. 놀라운 소리와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의 음악은 직선적이기도 한데, 이 부분을 좋아한다. 연주자와 성악가의 최대 역량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정확하게 파악해 함께 일하기 편하다. 죄르지 리게티의 세계를 누가 이어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진은숙이 그 이상으로 해내는 것 같다."

    [사진=금호아시아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