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최고의 이야기꾼 장항준, 9년 만의 스크린 나들이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기억의 밤', 압도적 서스펜스로 중무장
  • 개그맨 뺨치는 유머 감각으로 본업인 영화 연출보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더 많은 두각을 나타냈던 충무로 최고의 스토리텔러, 장항준 감독이 돌아왔다.

    장 감독이 상업 영화의 연출을 맡은 건 무려 9년 만이다. 사실 정말 9년 만인지는 확실치 않다. 공식 프로필 상에는 9년 만의 컴백이라고 적혀 있지만, 장 감독이 마지막으로 영화판에서 메가폰을 잡은 것은 2010년 김수로 주연의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을 연출했을 때다. 어쨌거나 재주 많기로 소문난 장 감독이 자신의 장기인 연출로 돌아왔다고 하니 반가울 따름. 그동안 예능에 너무 젖어 특유의 재기발랄한 감각이 무뎌지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되긴 했지만, 이런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장 감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훨씬 컸다.

    22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첫 선을 보인 영화 '기억의 밤'은 극장에 오기 전까지 일었던 갖가지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주는 작품이었다. 그는 '무한상사'를 연출한 장항준이 아니라 드라마 '싸인'의 연출과 극본을 맡았던 장항준으로 완벽하게 돌아와 있었다.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는 영화였다.

    지나치게 화목한 어느 가정의 일상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이면에 도사린 강력한 반전을 담고 있었다. '절대로 열면 안되는 2층 방'이 등장하면서부터 감돌기 시작하는 서늘한 공포는 마지막 앤딩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이어진다. 주인공 진석(강하늘 분)에게 치명적인 미끼를 던지는 남성의 아이디가 '푸른수염'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복선이다.

    장 감독이 예측하기 힘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구조를 띠고 있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영화 속 캐릭터와 관객 모두가 혼란에 빠지는 양상이 계속된다. 영화 중반, 충격적인 반전의 내용이 밝혀지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 "당신은 우리 형이 아니야!" 심장이 쫄깃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
    서로를 의심하게 된 형제.. 과연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소리'와 '이미지'로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주는 방식은 허정 감독의 '장산범'을 연상케 한다. 처음부터 소리가 주는 공포에 학습된 관객들은 나중엔 조금만 수상한 소리가 들려도 화들짝 놀라는 조건반사를 보인다. 필자 역시 장 감독의 '마술'에 걸린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처음부터 몇몇 장면에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를 맛본 뒤로는 시시한 장면에도 깜짝깜짝 놀라, 옆 자리의 관객에게 여러번 멋쩍은 미소를 지어야만했다.

    장 감독의 장점인 치밀한 구성력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 그리고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듯 하다. 아무리 연출력이 뛰어나도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시원치 않으면 영화가 빛을 발할 턱이 없다. 감독의 생각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미술·조명·음악도 마찬가지. 조금만 핀트가 어긋나거나 이질적인 느낌을 가져다 줄 경우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억의 밤'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과,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구성은 단연 최고였다. 알고보니 이 작품에는 영화 '끝까지 간다', '악의 연대기', '숨바꼭질'의 막강 제작진이 고스란히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장 감독의 너스레가 괜히 나온 말은 아니었다.

    김무열과 강하늘을 앞세운 출연진은 또 어떤가. '은교', '연평해전', '대립군'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한 김무열은 반전 요소가 가득한 '유석'의 옷을 입기에 제격이었다. 최근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한 강하늘도 자신의 기억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복잡다난한 인물, '진석'을 연기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진석과 유석,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끈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장항준 감독. 공존의 시간을 사는 두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IMF라는 시대상과 만나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과연 누가 살인자이고, 목격자이고, 피해자인지, 천재 스토리텔러 장항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의 해답을 오는 29일 극장에서 확인해 보자. 

  • [사진 제공 = 영화사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