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 음악, '시대정신' 담으려 노력했나
  •     
    지난 11월 22일 TV는 종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목숨을 걸고 귀순하는 북한 병사의 CCTV 영상이 반복됐다. 중상을 입었음에도 국민들의 염원을 하늘이 알아주었는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반가운 소식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기사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 의료진이 소녀시대의 'GEE' 노래를 오리지널 버전과 락 버전, 인디밴드 버전 등 3가지로 들려줬더니 북한 병사는 "오리저널 버전이 가장 좋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일보 11. 22                


    북한 귀순병사에게 차례 차례 외면당한 ‘락 버전’과 ‘인디밴드 버전’의 ‘GEE’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N밴드와 M밴드가 검색됐고 둘 다 락이고 인디(무명 또는 소규모 레이블)였다. 둘을 비교해본 결과 염색 여부에 따른 두 보컬리스트의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어보였다. 필자가 무당같은 신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상한 부분에서 브레이크가 정확히 들어갔고 뭔가 락 음악으로 새롭게 편곡했다고 볼만한 요소는 없었다. “여기 소녀시대 한표 추가요”라 중얼거리며 퇴근준비를 하는데 유튜브 자동재생으로 N밴드가 연주하고 노래한 ”노바디”(원더걸스)까지 듣는 순간 음악 애호가로서 가슴이 울컥하며 욕을 먹더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어쩌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인간한계에 다다른 귀순 병사마저 한국 인디 락을 외면하는가?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답변이 있어왔다. 우선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락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며 시대의 대세가 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60-70년대의 레드 제플린, 딥 퍼플같은 일종의 “초신성급” 또는 락의 “화신”에 비유할만한 밴드가 있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닌거 같다. (인간적으로 저런 원로분들 얘기하는데 콜드 플레이요! 그러지는 말자.) 

    그러나 틀렸다. 빌보드가 2009년 연말에 집계한 10년간 공연으로 최고의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 상위 5위가 각각 순서대로 롤링 스톤즈, 유투, 마돈나, 브루스 스프링스틴, 엘튼 존이다. 수시로 팝과 댄스를 오가는 마돈나 여사를 큰 마음먹고 예외로 하더라도 상위 다섯 중 넷이 락이다. 이 외에도 9위 본조비, 10위 빌리 조엘, 11위 폴리스, 12위 이글스 , 14위 에어로스미스. 아직은 락과 락밴드가 다해먹는 분위기다.

    돈만 많이 번다고 여전히 락의 시대냐, 이미 락 스피릿은 죽었어! 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대중음악의 원산지 영국에서 2012년에 개최된 올림픽 개막식 행사는 왜 폴 메카트니가 하고, 폐막식은 무려 ‘Wanna Be’의 스파이스 걸스가 재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더 후(The Who)가 마지막 무대에 섰나? 영국에 설마하니 다른 장르 음악이 없어서?

    저스틴 비버와 셀린 디온, 그리고 초신성급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를 배출한 캐나다 역시 2010년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원로 락 뮤지션이자 그런지 록의 대가 닐 영을 세웠다. 누가 감히 락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는가? 그것이야 말로 어떤 섬을 연상케 하는 비겁한 변명이거나 우물안 개구리를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두 번째 답변은 척박한 국내 락 음악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돌 중심의 거대 기획사와 방송국에 의해 좌우되는 음악 시장에서 락 음악이 차별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그럴듯하다. 예를 들면 2006년 광복절에 있었던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을 한 방송사에서 녹화 방송해주었는데 남들 다 자는 심야 시간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2009년에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자 모 방송에서 특집으로 저 유명한 부다페스트 공연실황을 방영했는데 그것도 심야였다. 뭔가 아이돌 중심의 가요만 들으라고 방송이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필자뿐은 아닐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것도 곰곰 생각해보면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메탈리카 내한공연만 해도 그것이 심야 시간대였다고 하나, 수천의 관객이 파업한 근로자들마냥 팔을 치켜들고“DIE! DIE!”(죽어! 죽어!)를 외치는 장면이 여과없이 공중파에서 방영된 것만 봐도 한국 대중문화의 저변이 얼마나 넓어진 것인가? 이것이 과거에 비해 락 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될리 없다. 

    물론 지난날 척박하기 짝이 없던 우리의 락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비틀즈는 일찍이 1966년에 일본에서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존과 조지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지난 2015년이 돼서야 폴 메카트니의 내한공연을 볼 수 있었다. 폴은 2013-2105년에 걸쳐 ‘Out Ther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순회공연을 했는데 2013년에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에서 6회, 2015년에는 5회 공연하고 나서 한국에 들렀던 것이다. 이 외에도 대중문화를 놓고 일본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숨이 나올테니 이쯤하도록 한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비틀즈가 저랬으니 상대적으로 매니악한 락·메탈의 후진성은 말할 것도 없다. 기독교 복음을 가사에 담는 독특한 개성으로 종교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스트라이퍼의 1989년 내한공연이 최초의 메탈밴드 내한공연으로 기록된다. 헤비메탈의 어원이 되는 스테픈 울프의 “Born to Be Wild”가 발표된지 정확히 31년만에 우리는 첫 메탈밴드를 초대했던 것이다.

    1997년 여름 데스메탈 밴드 캐니벌 콥스의 음반을 국내에 발매했다가 30대 초반의 음반사 차장이 구속됐는데(!) 죄명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이었다. 이 즈음 메탈리카의 첫 내한공연을 성사시키려던 기획사 관계자가‘One’의 도입부를 공무원에게 들려주며 “이렇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밴드에요~” 라고 사기 아닌 사기를 쳐야 했던게 우리나라다.

    2001년에 슬레이어와 세풀투라 등 세계적인 메탈밴드들이 서울 동대문에서 합동공연을 했는데 덜렁 관객이 500명이었던 것은 둘째 치고 동네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어서 공연중에 소리를 줄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금 돌아보니 이게 신문에 기고할 칼럼만 아니었으면 이모티콘과 함께해야 마땅한 대목이다. 흑역사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락 음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제도가 한참 시대에 뒤떨어졌던 저 시절에 오히려 국내 락 밴드가 더 사랑받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거대 기획사가 만드는 문제도 있겠으나 그 효시라 할 수 있는 S기획사가 만들어진게 1989년이고 H.O.T가 데뷔한 것이 1996년이다. 그런데 언뜻 생각해봐도 그 시절 가요톱텐 상위권에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1992)와 부활의 ‘사랑할수록’(1993)이 올라왔고,‘열여섯 스물’(1997)의 주주 클럽이 올라왔다. 음악적으로 진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다려 늑대(1997)’를 부른 줄리엣도 어쨌건 락 밴드였다.

    같은 해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김경호는 당시 이소라가 진행하던 간판 음악방송에 출연해 ‘헤드뱅’을 하며 스키드 로의 노래를 불렀다가 속칭 대박이 났다. 그리고 90년대를 통틀어 노래방에서 고음이 좀 된다 하는 애들은 모두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1991)을 불렀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밴드들은 거대 기획사 소속도 아니었을 뿐더러 실제로 무명 밴드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더 암울했던 환경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찬란한 연꽃을 피운 것이다.
     
    한국 인디 락이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세 번째 답변은 필자가 강력히 지지하는 것이며 동시에 가장 말하기 불편한 경우다. 바로 홍대를 비롯한 인디 뮤직의 둥지에서 밴드들이 제대로 된 음악을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디밴드의 몇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라는 점을 전제한다.

    첫째, 최근 젊은 인디 밴드들은 모든 음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멜로디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화성학 교과서에 나오거나 코드 생성기로 조합한 듯한 몇 개의 코드를 나열하고 되는대로 멜로디를 구겨 넣는 것을 작곡이라고 믿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당연히 변변한 기타 솔로나 여운을 주는 주선율이 없으니 그 노래가 다 그 노래같다. 심지어 예전에 한 락페에 갔더니 어떤 밴드는 기타리스트가 두 명인데 코드 반주만 하다 내려간다. 물론 자세히 보니 한명은 이른바 하이 코드를 잡고 있긴 했지만 일종의 인력 낭비 아닌가?

    둘째, 도무지 공감하기 힘든 “인디밴드 스타일”의 가사도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마치 나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무언가를 느낀다는 식의 선민의식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가사 내용으로 볼 때 그냥 방에 혼자 앉아 있거나 집근처를 걷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인데 마치 황홀하고 신비로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 듯이 상황을 이야기한다. 대개 이런 노래를 하는 보컬들은 접신한 듯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노래하는데 별로 공감이 안가서 더욱 민망하다.

    셋째, 보컬이 다양한 창법과 발성을 구사하지 못한다. 특히 일부 여성 보컬들은 가성과 속삭임만으로 노래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건 웬만큼 아름답거나 개성있는 목소리를 타고 나지 않고서는 가당치 않은 모험이 될 수 있다. 폭포수 아래에서 득음까지는 아니어도 남녀를 불문하고 가수는 어느 정도 프로페셔널한 발성과 안정된 성량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무대를 장악하지 못하는 밴드들이 적지 않다. 즉, 무대에서 수줍어 한다. 이런 유형의 밴드는 기타와 베이스가 대개 모자를 눌러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연주한다. 좀 당당하게 관객도 보고 그러면 좋으련만 무대를 이끌어야 할 보컬마저도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표정도 뭔가 무대에서 기가 죽어 있는걸 감추려고 애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본인들은 흥에 겨운지 모르겠으나 보는 내내 안쓰럽다. 그런 밴드가 공연 말미에 “여러분 저희들 음반이 나왔어요” 라며 사달라고 할 때 “와, 저런 애들도 음반을 내는구나”하는 감탄을 하게된다.

    결국 인디 밴드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려면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좋은 곡을 쓸 능력 혹은 성실함은 없으니 이제“아이돌”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기에 이른 것이라면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사실 락 음악의 원천은 대개 분노, 좌절, 후회같은 감정인데, 예쁘게 사랑하는 인생 좋은 시절을 노래하는 소녀들의 음악을 가져와서 왜 분노의 샤우트를 하고 객석에 소리를 지르라고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정치색을 띄는 집회의 열기에 편승해 공연하는 인디 밴드들도 측은하기는 마찬가지다. 관객이라 쓰고 시위대라고 읽는 사람들이 일단 우리편이다 싶으니 열렬히 환호를 보내지만 이후 순수하게 그 밴드를 보러 나올 사람이 그 가운데 몇이나 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그날 집회가 내세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무대에 섰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관객의 환호와 박수는 일종의 마약이다. 그래서 무대가 고프고 당장 생활비가 아쉬운 악단에게 이런 얘기가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타 장르에 비해 락 밴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어떤 현실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숭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참 마약에 절어있던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어느날 모처럼 맨 정신으로 TV를 보는데 상업 광고에 도어즈가 나오자 격분했던 일화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동명 영화(1991)에도 소개된다. 발 킬머 연기 참 잘했다.

    롤링 스톤즈가 1997년에 발매된 음반 Bridges to Babylon 을 제작하다가 당시 전 세계 가수들이 곡을 맡기고 싶어서 줄을 섰던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를 해고한 일화는 유명하다. 베이비페이스가 손만 대면 히트곡이 되던 시절에 그를 해고한 것은 까짓 히트곡이 안돼도 좋으니 우리 스타일을 네 멋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거야 롤링스톤즈가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 라고 빈정대기전에 돈 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들의 자세에서 뭔가 배울게 있을 것이다.

    정치학을 공부해온 필자에게 소련의 몰락은 학문적으로도 큰 연구 주제였지만 락 애호가로서도 감동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런 큰 제국이 무너진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락 음악이 한 몫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메탈리카가 모스크바에서 ‘엔터샌드맨’을 열연했던 1991년 ‘몬스터즈 오브 락’은 자유를 갈망해온 60만 러시아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감동의 락 콘서트였다.

    러시아의 영자신문 『모스크바 타임스』 역시 2015년 “모스크바에서 공연한 가장 전설적인 다섯 명의 서양 아티스트”라는 기사에서 마이클 잭슨, 메탈리카, 프로디지, 레드 핫 칠리페퍼스 등의 공연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들 공연은 사실상 소련이 붕괴한 1990년 이후였고 서슬퍼런 냉전기에 모스크바에서 감동의 공연을 펼친 밴드는 유라이어 힙(1987)이었다. 특히 보컬리스트 버니 셔가 목석처럼 서 있는 소련 병사에게 악수를 청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병사가 화답하는 장면은 소련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일개 뮤지션을 넘어 자유라는 시대정신을 설파한 선지자들이었다.  

    위대한 락 밴드들은 나름의 소명 의식을 가진 이들이었고 평범한 필자가 봐도 정말 열심히 연습하며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었다. 오늘날 ‘아이돌’ 댄스 음악을 따라하며 관객들의 갈채와 환호를 애처롭게“호소”하는 인디 밴드 판에 이런 시대 정신이 있는가? 하루 17시간을 연습했다는 잉베이 맘스틴의 열정이 있는가? 그들이 외면당하는 게 모두 거대기획사 때문이고, 과일 이름을 딴 음원서비스 업체 때문인가?

    [사진 제공 = TOPIC/SplashNews (www.splashnews.com 스플래쉬닷컴)]